폭염과 집중호우, 한파처럼 과거에는 이례적으로 여겨졌던 기상이변이 이제는 일상적인 위험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날씨의 영향을 직접 받는 전통시장이나 건설현장, 농업 분야에서는 기후 변화가 단순한 불편을 넘어 매출 감소와 영업 중단, 소득 손실로 이어지는 경영 위험이 되고 있는데요.
최근 보험업계에서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 새로운 형태의 보장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실제 손해액을 일일이 계산하기보다 기온·강수량·지연시간 등 객관적인 수치가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수형 보험(Parametric Insurance)’입니다.
전통시장 매출 감소도 날씨를 기준으로 보상
KB손해보험이 판매하고 있는 ‘KB 전통시장 날씨피해 보상보험’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폭우나 폭염, 한파로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면 상인 입장에서는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존 보험 방식으로는 매출 감소가 정말 날씨 때문에 발생했는지, 실제 손해가 얼마인지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상품은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강수량과 최고기온, 최저기온이라는 세 가지 기상지수를 기준으로 정하고, 약속된 조건에 해당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구조입니다.
즉,
‘얼마나 손해를 봤는가?’보다
‘날씨가 약정된 기준에 도달했는가?’
를 보험금 지급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KB손해보험은 기상관측 자료와 전통시장 매출 데이터를 약 2년간 분석해 상품을 설계했으며, 상인회나 지방자치단체가 계약자가 되어 시장 내 일정 비율 이상의 점포가 함께 가입하는 단체보험 형태로 운영됩니다.
전통시장 휴업손실과 기상지수를 연결했다는 점에서 기존 날씨보험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항공기 지연도 같은 원리로 보상
지수형 보험은 전통시장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보험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삼성화재는 항공편이 일정 시간 이상 지연되거나 결항될 경우 실제 발생한 비용을 하나하나 증빙하는 방식 대신 항공기 지연시간을 기준으로 정액 보험금을 지급하는 지수형 특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출국편뿐 아니라 귀국편과 해외 경유편의 지연까지 보장 범위가 확대됐습니다.
전통시장에서는 기온과 강수량, 여행보험에서는 항공기 지연시간이 보험금 지급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지표가 되는 셈입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처럼 미리 정해 놓은 특정 지표가 조건을 충족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파라메트릭 보험’이라고 부릅니다.
농작물부터 건설현장까지 넓어지는 기후보험
기후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은 농업 분야에서는 이미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NH농협손해보험의 농작물재해보험은 태풍이나 우박, 집중호우뿐만 아니라 가을 동상해와 강한 햇볕으로 과실이 손상되는 일소피해 등 다양한 자연재해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농작물재해보험은 실제 농작물에 발생한 피해를 확인하고 손해를 보상한다는 점에서 특정 기상수치를 기준으로 지급하는 지수형 보험과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앞으로 눈여겨볼 분야는 건설현장입니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서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소상공인 및 취약계층을 위한 상생보험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역별 특성에 맞춘 기후보험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폭염경보 때문에 건설작업이 중단되면 근로자가 일을 하지 못해 발생한 소득 손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보전하는 방식입니다.
앞으로는 건물이 침수되거나 시설물이 파손되는 것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피해뿐 아니라 ‘날씨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한 손실’까지 보험으로 대비하는 영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지수형 보험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수형 보험의 가장 큰 장점은 보상 절차를 단순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 방식처럼 사고 전후의 매출자료와 비용을 비교해 실제 손해액을 복잡하게 계산하기보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데이터를 활용해 약정된 기준을 충족했는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손해조사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보험금 지급 절차도 간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실제 손해와 보험금 지급기준이 항상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폭염으로 매출이 크게 감소했더라도 실제 기온이 약관에서 정한 기준에 조금 미달했다면 보험금 지급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제 손실은 크지 않았는데 기상지수가 기준을 넘어 보험금 지급 조건을 충족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보험에서는 ‘베이시스 리스크(Basis Risk)’라고 합니다.
결국 지수형 보험에서는 단순히 ‘폭염이나 폭우를 보장한다’는 설명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기상지수를 사용하는지, 몇 도 또는 어느 정도의 강수량부터 지급되는지, 관측지역은 어디인지, 보험금 지급 조건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를 약관에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후변화가 계속되면서 보험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태풍으로 건물이 파손되거나 침수되는 것처럼 이미 발생한 물리적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폭염·폭우·한파와 같은 날씨 자체를 데이터화해 경제적 손실을 보완하는 보험이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날씨가 나쁘면 장사가 안 된다’는 막연한 이야기가 이제는 보험에서 측정하고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위험으로 바뀌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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